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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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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학교 가로지르는 마을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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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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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조회수 |
1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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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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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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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bumo |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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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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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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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학교 가로지르는 마을버스
ㄹ자형 골목에 노선허가… 학교·학부모 반발
시장통을 지나 형성된 마을에는 서민들의 다가구 주택이 빽빽이 들어
서 있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250m쯤 따
라 올라가자, ‘한빛맹아(盲兒)학교’가 나왔다. 학교를 지나면 가파
른 경사길을 따라 다시 서민들 주택이 길게 줄을 잇는다.
서울 강북구 수유1동. 이 동네 주민들은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서로 의
지하며 도우며 살았다. 주민들은 장애인 학교를 혐오시설이라고 거부
하지 않았고, 그런 이웃들에 대해 맹아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고마
움을 느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20일 낮 12시. 맹아학교 학생 30여명이
‘밴드부’ 연습을 마치고 학교에서 100여m 떨어진 기숙사로 이동하
고 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의식’을 치르듯 서로의 손과 어깨를 잡
고 조심스럽게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오빠, 밀지 마.” 일곱 살 다혜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자 뒤
따라오던 오빠 탓을 했다. 몇몇 아이들이 대열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제일 맏형 격인 경호(16)가 “야! 차소리 듣고 똑바로 가야지”라며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 곁으로 갑자기 승합차가 ‘쌩’ 하고 지나갔
다.
조용하던 이곳에 최근 마을버스 노선(路線) 신설을 놓고 주민과 학교
사이, 또 주민들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고지대(高地帶) 주민들
민원으로 맹아학교 담장을 끼고 운행되는 마을버스 노선안이 최근 구
청에서 통과하자, 학교 관계자들과 학부모들이 “앞을 못 보는 아이
들 안전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김교민(56) 맹아원 원장은 “가끔 지나다니는 승용차도 아이
들에게 위험천만인데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 마을버스가 다니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5년 전 한 아이가 학교 정문 앞에서 교통사고로 목
숨을 잃은 적이 있어 더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한빛맹아학교 학생은 유치부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120여명.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은 등하교와 점심시간 등 하루 3~4번 학교와 기
숙사를 왕복한다. 또 중·고등부 학생들은 길을 가로질러 기숙사에서
300여m 떨어진 동네 수퍼마켓을 자주 드나든다. 이날도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샀다는 전경호(16)군은 “앞으로 10분 간격으로 버스가 지나가
면 이 길을 못 가게 될지도 모른대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학교 학부모회 회장 안진주(37)씨는 “딸아이(10)가 시각장애 1급
에 말까지 못해 차가 다가와도 소리 한번 못 지를 처지”라며 “학교
앞 도로가 ‘ㄹ’자 형이라 시야가 막혀 있어 마을버스가 지나다닌다
면 사고가 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마을버
스가 운행된다면 도로에 드러누워 버리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주민들 간 의견도 갈렸다. 주민 김모(55)씨는 “주민들도 생업상 교통
편의를 위해 요청한 것인데, 맹아학교에서 너무 섭섭하게 나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주민은 “일반 성인이 다니기에도 좁
은 길이라 (마을버스가 다니기) 위험하다”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주민은 “구청에서 하다못해 인도와 차도 사이에 분리대라도 만
들면 좀 낫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노선안을 통과시킨 강북구청은 “신규 도로가 건설되는 2년 동안만 임
시로 운행할 예정”이라며 “위험한 측면은 있지만 고지대 주민들 편
의가 달린 문제라 심의가 통과됐다”고 말했다.
주민편의냐 장애아 안전이냐. 하지만 이 동네 일부 주민들은 애시당
초 ‘잘못된 문제’를 놓고 ‘정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
까.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맹아학교를 지을 때부터 이러한
안전문제를 고려했어야 했다”며 “뉴욕같이 교통지옥인 도시에서도
맹아학교 주변만큼은 인도와 차도가 멀찍이 떨어지도록 규제하고 있
다”고 말했다.
‘장애인 정책 부재(不在) 사회’에서 힘없는 서민들과 장애인들이
그 짐을 나눠지고 있는 것이다.
(신지은기자 ifyouar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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