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제 목 |
|
`편견`용광로서 약자의 삶 경험 |
|
| |
번 호 |
|
82 |
조회수 |
1657 |
|
이메일 |
|
|
|
| |
작성자 |
|
강다나 |
작성일 |
|
03-09-25 |
|
| |
내 용 |
|
“커밍아웃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순식간에 주류에서 사회 소수자로
추락했지만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 눈떴습니다.”
지난 2000년 9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 이후, 이름에
따라붙는 꼬리표가 배우에서 동성애자로 바뀐 홍석천(32). 다음달 4
일 첫방송되는 SBS 주말극 ‘완전한 사랑’(김수현 극본, 곽영범 연
출)을 통해 본격적인 ‘안방 복권(復權)’을 앞둔 그를 지난 5일 오
후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이태원의 바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3년의 세월을 ‘사회에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격리당한 시절’로 회상했다. “예상은 했지만 충격이 컸어요. 외국생
활도 생각했지만 엄연한 동성애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한국사회에 돌
만 던지고 도망가는 꼴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대
가는 혹독했지만 지난 3년은 그를 사회적 편견과 외로움의 용광로에
서 단단히 제련시켰다. 아침방송 리포터나 시트콤에 드물게 출연하는
데 그쳤던 그는 “커밍아웃으로 잃은 것도 사람이었지만 얻은 것도 사
람이었다”고 말했다. “제 본무대인 TV 쪽에서도 여러차례 섭외가 있
었지만 번번이 국민정서를 우려하는 ‘웃분들’때문에 무산됐죠. 하지
만 버스나 지하철,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밤무대에 서면서 ‘(TV에)
왜 안나오느냐’며 격려해주시는 분들로부터 힘을 얻었어요.” 그는
“커밍아웃 초기의 방송출연 찬반에 대한 ‘국민정서’가 2대8 정도였
다면 지금은 7대3은 되는 것 같다”며 “‘재수는 좀 없지만 성적취향
을 이유로 차별당하는 건 문제 아니냐’하는 분들을 포함해서”라고
덧붙였다.
커밍아웃으로 인해 변방의 비주류로 굴러떨어진 그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끼리 서로 껴안는 연대를 통해 또 한번의 새로운 ‘커밍아웃’
을 경험했다고 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애인, 얼굴화상환자, 성
폭력 피해 여성, 외국인노동자, 산재 노동자, 입양아, 혼혈아 등 차별
받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눈뜬 봉사였구나 싶어 말할 수 없는 부
끄러움을 느꼈죠. 또 한꺼풀 허위의식을 벗기면 누구나 소수자라는 깨
달음도 얻고,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
다른 변화는 관계가 풍성해진 것이다. 그를 상대로 속을 툭 터놓는 사
람들이 많아졌다. 아가씨 아줌마 할 것 없이 여성들은 그를 ‘수다를
함께 떨 수 있는 남자’로 생각해 성문제를 포함한 인생상담을 청해오
곤 한다. 남자들도 다르지 않다. “한국 남성은 참 이중적이에요. 겉
으로는 마초인양 하지만 속으로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거죠. 평범한 남성들 중에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내 감정을 나도 잘 모르겠다’는 분들도 많아서 저도 놀랐어요.”
그는 지난달 27일 한국사회의 변화상을 취재하는 뉴욕타임스 기자와
의 인터뷰에서 ‘(다른 동성애자들은) 왜 함께 싸우지 않느냐’라는
질문이 마음을 파고 들었다고 말했다. “제가 커밍아웃이후 겪는 과정
을 지켜봤다면 어느 누가 감히 커밍아웃을 할 수 있겠어요. 사실 모
든 걸 다 잃을 텐데 무조건 함께 가자고 청할 수는 없지요.” 내내 담
담한 쾌활함을 유지하던 그의 눈에 잠시 물기가 어렸다. “저도 인간
인데 왜 후회가 없겠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나 할 걸 싶기도 했
고. 어머니는 매일같이 제가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새벽기도를 하
시고, 아버지는 여전히 백방으로 신부감을 찾으시죠.”
그러나 곧 원기를 회복한 그는 “동성애자 홍석천이 아닌 연기자 홍석
천으로 당당하게 대우받도록 힘쓸 것”이라며 “연기와 별개로 사회
적 활동, 특히 미혼모 방지와 국내 입양문화 확산, 에이즈 예방운동
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수진기자 lulu@munhwa.co.kr
|
|
|
|
|
